지요다구 황거 에도성 소나무 복도 터
칼을 뽑아서는 안되는 에도성 안에서의 칼부림 사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복수의 원인이었던 에도성 소나무 복도 사건
1701년 3월 14일, 에도성 안의 소나무 복도에서 아코 지역 영주 아사노 다쿠미노가미가 기라 고즈케노스케를 죽이려고 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날은 천황의 사자가 에도성을 방문해 인사를 올리는 의식이 펼쳐지는 날이었습니다. 아사노 다쿠미노카미는 이 사자를 접대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기라 고즈케노스케는 그 지도역이었습니다. 이 둘은 무언가의 원인으로 사이가 틀어졌고, 아사노가 기라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지금도 그 이유는 모릅니다. 어떤 설에 따르면 기라가 요구한 뇌물을 아사노가 바치지 않아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코 지역의 소금 산업이 번창하자 기라가 그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였지만 아사노가 거부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격노한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아사노 다쿠미노카미에게 즉시 할복할 것을 명하여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또한 당시 무사의 상식으로는 무사 끼리 싸움이 일어났을 경우 그 시비와 관계없이 양쪽 다 처벌을 받는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라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판결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이 사건으로 아코 지역은 멸망하게 됩니다. 아사노의 부하들은 모실 주군을 잃고 낭인이 됩니다. 이 아코 로시(낭인 무사)를 이끌었던 것이 아코의 가노(지금의 총리대신)였던 오시기 구라노스케입니다.오이시 구라노스케는 처음에는 아코의 부흥을 위해 활동을 시작하였지만, 아사노 다쿠미노카미의 후계자이자 그의 동생인 아사노 다이가쿠가 도쿠가와 정권으로부터 칩거를 명받은 뒤, 부흥을 포기하고 기라를 향한 복수를 계획합니다.일본의 무사도를 표현한 가부키 주신구라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모든 발단이 된 사건이 소나무 복도 사건입니다. 소나무 복도에서 일어난 일을 본편에서 자세히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