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오구 니혼바시 니혼바시 우체국
일본 근대 우편이 아버지 마에지마 히소카
근대 우편제도를 만든 마에지마 히소카의 분투기
일본의 우편은 굉장히 정확합니다. 그 역사 또한 오래되어 645년경부터 말을 사용하여 공문서 배달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1190년경 말이 아닌 사람이 달려서 편지를 전달하곤 했습니다. 에도시대에는 말과 사람 둘 다 사용되었는데 1870년대에 우편 사업이 시작한 뒤 사람이 우편배달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우편제도를 확립한 것이 마에지마 히소카라는 사람입니다.마에지마 히소카는 외국의 우편 제도를 참고하였습니다. 1858년 일본과 미국의 통상조약으로 요코하마 등 각지에 외국 영사관이 생겼습니다. 이 영사관과 본국과의 연락과 서류 전달을 위한 시스템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정보 교환이 근대화의 성패를 가른다고 생각한 마에지마 히소카는 메이지 정부에게 우편제도를 설립할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마에지마 히소카는 우편제도 확립 전에 큰일을 하나 하였습니다. 그것은 수도를 에도로 옮기는 것입니다.지금 일본의 수도는 도쿄입니다. 도쿠가와 정권이 멸망한 뒤 메이지 신정부는 수도를 좁은 교토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유력 후보가 오사카였습니다. 오사카는 교토에서 가까운 번창한 상업 도시였기 때문인데, 교토를 거점으로 하는 공가들이 반대하였습니다. 이때, 마에지마 히소카가 <도쿄 천도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골자는, - 오사카는 교토에 가깝기 때문에 천도하지 않아도 번창해있다. - 에도는 세계에서 규모가 큰 도시이고 인구도 많다. 도시기반도 갖춰져 있는데 다른 곳을 수도로 삼는다면 사람이 줄고 도시가 쇠퇴해버릴 것이다. - 사용되지 않는 넓은 영지들이 있기 때문에 도시 정비 후 새로운 마을을 만들기 좋다.앞으로의 도시를 생각하였을 때 에도가 최적이라고 생각하였고 많은 찬성이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도쿄 천도가 정해졌고, 마에지마 히소카는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그리고 마에지마 히소카가 확립한 우편제도 또한 일본 발전에 빠뜨릴 수 없습니다. 일본의 기반을 정비한 마에지마 히소카의 이야기를 본편에서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