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토구 아사쿠사 히칸이나리신사
에도 소방관의 리더 신몬 다쓰고로의 생애
소방 사령관 다쓰고로는 불에 휩싸였던 과거가 있다
도쿠가와 정권하 에도의 히케시(지금의 소방대원)는 에도 서민들의 동경 대상이었습니다. “화재와 싸움은 에도의 꽃”이라고 말해질 만큼 에도에는 빈번히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목숨 걸고 진화 작업을 펼치는 히케시는 서민들의 영웅이었습니다.그리고 도쿠가와 정권 말기, 에도 히케시의 리더로 유명한 인물이 신몬 다쓰고로입니다. 신몬 다쓰고로는, 아사쿠사 히케시 ‘오’반을 이끌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고 싸움을 중재할 때에는 모든 사람이 신몬 다쓰고로의 판정에 따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야쿠자들도 신몬 다쓰고로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야쿠자의 두목과 같은 역할도 하게 된 것입니다.이렇게 폭넓은 교우관계 중에 신몬 다쓰고로는 가인 계급 무사인 가쓰 고키치와도 알게 됩니다. 가쓰는 검술이 뛰어나고 경호원과 같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상황에서 신몬 다스고로와 가쓰 고키치가 만날 일이 많았고 어느샌가 친구가 되어 있습니다. 가쓰 고키치의 아들이 나중에 도쿠가와 정권이 무너지던 시절 에도를 전투에서 구해낸 가쓰 가이슈입니다.또한 신몬은 도쿠가와 가문의 마지막 15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와도 아는 사이가 됩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신몬 다쓰고로의 인품과 대담함에 감탄하여 그를 신뢰하였습니다.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864년 수위 총독으로 교토에 갔을 때, 에도에서 신몬 다쓰고로를 불러서 니조성의 경비 등을 맡겼습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신뢰를 받았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도쿠가와 쇼군 가문을 위해 공헌해 갔습니다.지금도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하자면 1868년 1월 도쿠가와 정권의 군과 반도쿠가와 정권의 군이 전투를 벌였을 때 도쿠가와 정권의 군이 패배하여 오사카성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때, 오사카성에 남은 도쿠가와 정권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소유했던 쇼군의 징표를 가지고 오사카성을 떠나 에도로 도망친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신변을 보호하였습니다. 암살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목숨이 위험했던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신몬 다쓰고로와 부하 히케시들에 의해 목숨을 유지했던 것입니다.도쿠가와 정권의 인물들로부터도, 에도 서민들로부터도 신뢰를 받은 신몬 다쓰고로인데, 그의 부모가 히케시였던 것은 아닙니다. 신몬 다쓰고로는 어떻게 하여 히케시의 길에 들어섰을까요? 거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에도 제일 히케시 두목의 탄생 비화를 본편에서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