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토구 야나카 묘지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피싸움 없이 에도성을 내준 쇼군 요시노부의 심경은
도쿠가와 정권의 마지막 쇼군,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평가가 나뉘는 인물입니다. 도쿠가와 정권을 멸망시킨 인물이라고도, 자신이 항복하는 대신 일본의 내란을 막은 인물이라고도 말해집니다.이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사실 도쿠가와 정권을 수립한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환생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기대받던 쇼군입니다. 서양의 생각에도 이해를 내비치고 군대나 정치제도의 근대화를 추진하였습니다. 해군 확장에도 힘을 넣어 도쿠가와 해군이 동양에서 가장 강하다고 말해졌습니다.이런 인물이었기에 도쿠가와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한편, 사쓰마(지금의 가고시마현)와 조슈(지금의 야마구치현) 등 도쿠가와 정권을 쓰러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경계하였습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1867년, 반도쿠가와 정권 측 사람들과 협의하여, 지금까지 도쿠가와 정권이 담당하고 있던 일본의 정치를 반도쿠가와 정권이 지지하는 천황에게 넘기기로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을 통치해본 적이 없던 조정이나 천황이 정치를 못 하겠다며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반도쿠가와 정권의 발언권도 없어져서 다시 일본의 정치를 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입니다.하지만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생각과 다르게, 조정은 정권을 받아들여 자신들이 정치를 행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도쿠가와 가문의 영지를 반납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은 많은 무사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영지를 반납하면 그들은 낭인, 즉 모시는 주군이 없는 무사가 되고 맙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결국 반도쿠가와 정권과의 전투로 쫓아낸 뒤 조정, 천황과 연계하여 정치를 행할 것이라 결심하였습니다.1868년 1월, 도쿠가와군과 반도쿠가와군이 교토 남부 도바 후시미에서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수적으로는 도쿠가와군이 유리했지만, 사쓰마와 조슈의 반도쿠가와군은 근대화된 무기를 사용하였기에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졌습니다.그리고 1월 5일, 반도쿠가와 정권 쪽에 천황가를 상징하는 빨간 비단 깃발이 꽂혔습니다. 천황이 반도쿠가와파의 편을 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에는, 천황이 무사보다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존황사상이 있었습니다. 천황과 싸우는 것은 자멸 행위였습니다. 존황사상 자체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태어난 미토(지금의 도치기현 미토시)에서 전국으로 뻗어 나간 사상입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도 아버지로부터 몇 번이나 배운 사상입니다. 그 대상인 천황이 자신을 공격해온다. 이렇게 생각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전례 없는 결단을 내립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고뇌와 결단, 본편에서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