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쿄구 고이시카와 공원
에도 서민의 목숨을구하라 - 고이시카와 양생소
가난한 서민을 구하기 위해 에도시대 최대의 의료개혁
의사가 되려면 의학부에서 6년간 공부한 뒤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지식과 기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하지만 도쿠가와 정권이 일본 정치를 다스리던 에도시대에는 의사 면허가 없었습니다. “나는 의사다”라고 말하면 그날부터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의 기량에는 몹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돌팔이 의사를 일본어로는 ‘야부이샤(대나무숲 의사)’라고 합니다. 나무가 무성한 대나무숲 속에서는 숲 밖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환자를 보더라도 진료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의사를 야부이샤, 즉 대나무숲 의사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또한 대나무가 되기 전의 어린줄기를 죽순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대나무숲조차 되지 못하는 의사를 죽순 의사라고 부릅니다.어찌 됐건 이런 의사가 많았었기 때문에 실력 있는 의사는 유명인이나 호상들의 인기를 끌어 막대한 진료비를 챙겼습니다. 한편, 서민은 의사에게 갈 돈이 없어서 병에 걸리거나 상처를 입어도 스스로 진단하여 약을 사곤 하였습니다. 의사에게만 갔어도 살 수 있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이런 상황을 바꾼 것이 오가와 쇼센이라는 의사입니다. 오가와 쇼센은 명의로 알려져 높은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의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민이 사는 연립주택에서 호출을 받고 가 보았는데 고통에 떠는 환자는 진료를 거부하였습니다. 진료를 받을 돈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눈앞에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를 구할 수 없는 의사. 환자에게 거부당하는 의사라는 건 무엇일까라고 오가와 쇼센은 생각하였습니다.그래서 오가와 쇼센은, 가난한 사람들도 병이나 상처를 입었을 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고선 그 시대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에게 건의하였습니다. 그 당시, 어떤 사람이라도 쇼군에게 제안을 할 수 있는 “메야스바코”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메야스바코를 이용하여 서민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무료 병원을 설치해달라고 주장한 것입니다.이 메야스바코에 의견을 넣을 때는 누가 작성한 것인지 자신의 이름도 써야 했습니다. 행여나 정치 비판이라고 판단되었을 경우에는 처벌받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영양가 있는 의견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오가와 쇼센은 이 메야스바코에 “돈 많은 자만 장수하고 서민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세상”이라고 비판하며 무료 진료소를 열도록 도쿠가와 정권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정치 비판으로 간주할 가능성도 있습니다.어느 날, 오가와 쇼센은 미나미마치 부교쇼에 출두를 명 받습니다. 각오를 다진 오가와 쇼센은, 미나미마치의 부교인 오오카 에치젠에게 생각지도 못한 명령을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