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쿄구 다이엔지
채소 가게 오시치와 호로쿠 지장보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불을 지른 소녀의 비련
<호로쿠>는 질냄비를 말합니다. 넙데데한 냄비로, 찻잎을 볶거나 쌀, 콩을 찌거나 할 때 사용합니다. 이 호로쿠 냄비와 연이 깊은 것이 도쿄 분쿄구 무코가오카에 있는 다이엔지란 절입니다. 도쿄 메트로 하쿠산역이나 혼고마고메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이 다이엔지에 많은 호로쿠 냄비가 봉납 되어 있는 호로쿠 지장보살님이 있습니다. 두통이나 눈병, 귀나 코와 관련된 병 등 목 위의 병들을 해결해주는 지장보살님으로 유명하여 소원을 적은 냄비가 많이 놓여 있습니다. 이 호로쿠 지장보살은 채소가게 오시치라는 여자아이의 넋을 기리기 위한 일화에서 유래합니다.도쿠가와 정권하의 에도(지금의 도쿄 중심부)에서는 “화재와 싸움은 에도의 꽃”이라 말해졌습니다. 불이 났을 때 ‘히케시’라 불리는 당시의 소방관들이 소화 작업을 합니다. 이때 히케시 중 어느 반이 소화 작업을 할지, 그리고 어디에 불이 났는지를 알리기 위해서 주변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천을 높이 흔들었습니다. 또 당시에는 물로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불씨의 원인이 된 집을 부숴서 화염이 퍼지는 것을 막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소화 작업은 얼핏 보기엔 화려해 보입니다. 옥상에서 천을 흔드는 사람도, 자기가 올라가 있는 건물까지 불이 퍼지만 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목숨을 걸고 소화 작업에 임했던 것입니다. 에도 서민들은 이 히케시들을 존경하였고 히케시들의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히케시 활동은 에도의 꽃이라고 불렸습니다. 싸움 진압에도 히케시들은 열정적이었는데, 히케시들끼리의 담당지 싸움이 치열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에도시대에 화재가 잦았던 것은, 일본 가옥의 대부분이 불에 약한 목조 건물이고 당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한 100만 명의 도시 에도에는 가옥이 밀집하여 있어서 화재가 발생하면 그 불이 퍼지기 십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화범은 사형에 처할 만큼 엄중히 다스려졌습니다.이런 방화범으로 처형 당한 것이 채소가게의 오시치라는 소녀였습니다. 방화범은 에도 서민들로부터 힐책을 당하고 경멸의 눈초리를 받는데, 왠지 모르게 오시치는 서민들의 동정을 샀습니다. 목숨은 살려주라는 의견도 많았기에 채소가게 오시치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호로쿠 지장보살이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러 갔습니다.오시치가 사람들의 동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