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오구 니혼바시 고덴마초
화재에서 죄수를 구한 이시데 다테와키의 결단
감옥에 불이 났을 때 죄수들을 풀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도쿄 주오구 니혼바시 고덴마초에는 일찍이 죄수를 수용하는 감옥이 있었습니다. 300명에서 4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이였습니다.이 고덴마초의 감옥은 도쿠가와 쇼군 가문이 정치하던 에도시대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도시대가 끝나고 메이지시대가 된 이후에도 사용되어 1875년까지 실제로 감옥의 역할을 계속하였습니다.또, 근대 형법의 개념이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 감옥은 재판 도중인 죄수는 물론 사형수를 수용하는 구치소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고덴마초 감옥 한 귀퉁이에서 실제로 사형이 행해졌습니다. 그 때문에 고덴마초 감옥에는 가벼운 죄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부터 사형이 정해진 흉악범까지 다양한 죄수가 갇혀 있었습니다.한편, 에도에는 종종 큰불이 났었습니다. 일본의 건축물은 목재를 중심으로 지어져 있기 때문에 화재에 약합니다. 1601년, 에도가 부흥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화재가 발생해 에도 마을이 거의 타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1631년에 발생한 화재는 4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화재로 번졌습니다.1601년에서 1868년 도쿠가와 정권이 끝날 때까지 커다란 화재가 49번, 작은 화재를 포함하면 1798번이나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토나 오사카와 같은 다른 도시에 비교해서도 매우 많은 숫자입니다.‘화재와 싸움은 에도의 꽃’이라고 말해질 정도였습니다.이 큰불의 피해를 고덴마초의 감옥도 입은 적이 있습니다.첫 번째로는 1653년이었습니다. 혼고, 고이시가와, 고지마치 세 군데에서 단속적으로 발생한 화재는 점점 커져 에도 마을 대부분을 태우는 대규모 화재로 발전하였습니다. 에도성 천수각이 불타 없어진 것도 이때의 불 때문입니다. 사망자 수가 10만 명 가까이 되어 에도시대의 가장 큰 화재로 전해져옵니다. (일본에서는 메이레키 대화재, 후리소데 화재라고 말해집니다)이때의 화염은 고덴마초의 감옥에까지 도달하였습니다. 진압할 수 없을 만큼 큰 화염이 마을 전체를 삼키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감옥을 관리하던 이시데 다테와키는 죄수들을 풀어주어야 할지 고민하였습니다.갇힌 죄수 중에는 사형이 정해져 있는 흉악범도 있었습니다. 만약, 이 화재로 인해 그들을 석방하게 되면 어떤 범죄가 일어나게 될지 모릅니다.죄수를 풀어줬을 때의 위험을 피하려면 죄수를 그대로 감옥에 넣어두어야 합니다. 그 말인즉슨 죄수 전체를 불에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한편, 가벼운 범죄로 갇힌 죄수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재판이 끝나는 대로 형벌을 받지만 하루 만에 끝나고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장차 마을로 돌아가 다시 생활할 죄수들을 눈앞에서 죽여도 되는 것인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불은 고덴마초를 향해옵니다. 이때 이시데 다테와키가 내린 결단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