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다구 황거
풍수지리로 지켜진 에도성
에도성은 풍수지리로 지켜져 왔다!
지금의 천황이 사는 황거는, 도쿠가와 정권이 일본을 통치하는 에도시대에 에도성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에도성에서 역대 도쿠가와 쇼군들이 생활하여 정치 활동도 하였습니다.이 에도성은 도쿠가와 정권의 창시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규모 건축으로 만든 성입니다. 그때까지 미카와(지금의 아이치현의 일부), 스루가(지금의 시즈오카현의 일부), 도토미(지금의 시즈오카현의 일부), 가이(지금의 야마나시현), 시나노(지금의 나가노현)를 영지로 사용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전 정권을 쥐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간토 지방을 영지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간토 지방의 정치를 위해 본거지로 삼은 곳이 에도성이었습니다.1590년에 대규모 개축이 벌어진 에도성은 그 후 약 270년 동안 정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에도 자체도 계속하여 번영하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 커다란 전투도 없이 평화가 유지되던 에도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그렇게 된 요인 중 하나가 풍수지리에 의한 것이란 걸 알고 계시는지요?풍수지리에서는 북동쪽과 남서쪽에 각각 귀신문, 뒷귀신문이 있어서 이곳을 통하여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에게 변화란 것은 자신들을 대신할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쿠가와 정권은 이 귀신문과 뒷귀신문에 큰 신사와 절을 세워 신관과 승려의 기도로 에도성을 유지하려고 한 것입니다.풍수지리로 인한 도시 정비를 주장한 것이 난코보 덴카이라는 승려였습니다. 난코보 덴카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자문역으로 활약하며 도쿠가와 정권의 초기 정치에 관여하였습니다.난코보 덴카이는 베일에 싸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인물인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간토로 옮겼을 때 자문역으로 나타난 것입니다.도쿠가와 이에야스 정도의 인물이 신뢰할 정도이니 굉장한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부터, 오슈(지금의 도호쿠 지방)의 유명 가문인 아시나 가문의 사람이라는 설이나, 도쿠가와 가문 이전의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가문의 사람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가까이 지냈던 아케치 미쓰히데가 덴카이가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출신이 어찌 됐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신뢰를 받았던 난코보 덴카이가 에도성을 지키기 위해 만든 장치는 무엇일까요? 도쿄의 지도를 보면서 본편을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