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오구, 고토구에 걸쳐진 다리 에이다이바시
한 무사의 순간적인 기지 에이다이바시 낙하 사고
에이다이바시가 무너져 내렸을 때 한 사무라이의 기지가 많은 생명을 구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일본에는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후 도쿠가와 가문의 사람이 정권을 세습하게 된 시대를 에도시대라고 부릅니다. 도쿠가와 정권의 수도인 에도(지금의 도쿄)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 에도시대는 약 260년간 이어졌는데 도쿠가와 정권 말기에 반도쿠가와 세력과의 전쟁이 벌어지기까지 그 어떤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에도시대의 무사는 검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유 없이 검을 뽑으면 처벌을 당할 정도였습니다. 검을 뽑는 것은 상대방의 목숨을 뺏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그 각오가 없으면 검을 뽑으면 안 된다고 정해져 있었습니다. 즉, 상대방을 쓰러뜨리지 못했을 경우에는 할복을 해야 할 가능성까지 있었습니다. 또한, 이유 없이 칼을 뽑으면 처벌의 대상이 되었기에 에도시대의 무사들은 칼을 뽑기 위해 큰 각오가 필요하였습니다.이처럼 평화로웠던 에도시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즐길 여유가 있었습니다. 서민, 무사할 것 없이 에도 시내의 경치 좋은 곳을 산책하거나 신사, 절 등을 방문하며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인기 있었던 장소가 에이다이바시라는 다리입니다.지금과 달리 고층 건축물이 없었던 에도시대에 에이다이바시 다리는 후지산이나 쓰쿠바산, 하코네산이나 보소반도를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또한, 에이다이바시는 후카가와의 도미오카 하치만구 신사와도 가까워 이 신사의 참배객들이 에이다이바시를 많이 이용하였기 때문에 언제나 붐볐습니다.하지만 당시의 다리는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많은 사람의 왕래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손상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이다이바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리를 새로 지어야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도쿠가와 정권은 그 비용을 생각하여 에이다이바시를 없애버리기로 하였습니다.하지만 에도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하던 다리가 없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 시민들이 도쿠가와 정권과 교섭하여 직접 에이다이바시를 관리하기로 하였습니다. 도쿠가와 정권도 그를 허락하여 에이다이바시는 존속될 수 있었습니다.1807년, 도미오카 하치만구의 축제가 있던 날에도 에이다이바시에는 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리 위에 사람들이 촘촘히 걸어 다니고 있어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한 무사가 다리 끝자락에서 갑자기 칼을 뽑아 들고 다리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칼을 휘둘렀던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무사를 무서워하여 다리를 건너지 않고 멈추어 섰습니다. 이 무사는 에도 미나미부교쇼의 관리 와타나베 고자에몬이였습니다. 당시 무사가 칼을 뽑아 들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와타나베 고자에몬이 칼을 뽑은 이유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