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쿄구 도쿄돔
포화 속으로 사라진 거물 투수 사와무라 에이지
전쟁에서 죽어간 전설의 투수 사와무라 에이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그 시즌 최고의 선발 투수에게는 <사와무라상>이 주어집니다. 선발 투수란 것은 시합이 시작되었을 때 그 팀에서 가장 먼저 공을 던지는 투수를 말합니다. 이 선발 투수의 기량에 따라 그 날 시합 흐름이 결정된다고 말해질 정도로 중요한 역할입니다. 이 사와무라상은 한 투수의 이름을 따와 만들어진 상입니다. 그 투수의 이름은 사와무라 에이지입니다. 사와무라 에이지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크게 활약하던 선수입니다. 사와무라 에이지의 존재가 전국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34년 요미우리 신문이 주최한 일본과 미국의 야구 시합에서였습니다. 메이저 리그 올스타급 선수들을 일본에 부른 것입니다.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등 메이저 리그의 전설이라 불리는 유명 선수들이 일본에 찾아왔습니다. 한편, 일본팀은 그 당시 아직 프로야구가 없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대학, 사회인 등 아마추어 선수 중 일류 선수들을 끌어모은 팀이었습니다. 두 나라의 실력 차인 너무 커서 일본팀은 매일매일 메이저 리그 선발팀에게 큰 점수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11월 20일, 시즈오카현 구사나기 구장에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이날, 일본의 선발 투수는 사와무라 에이지였습니다. 젊은 고등학생 선수였습니다. 이날 또한 메이저 리그 선발팀이 크게 이길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하였습니다. 하지만, 선발로 나간 사와무라 에이지는 굉장히 빠른 직구와 크게 꺾이는 변화구로 베이브 루스와 같은 메이저 리그 선발 선수들을 줄줄이 삼진 아웃시켰습니다. 처음엔 여유로웠던 메이저 리그 선발 선수들의 얼굴은 점점 진지해져 갔습니다. 메이저 스타 군단이 일본 고등학생에게 져 버리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대항해온 메이저 리그 선수들을 상대로 사와무라 에이지는 지지 않고 계속해서 좋은 공을 던졌습니다. 7회 말, 루 게릭이 솔로 홈런을 쳤고 이 실점 하나로 사와무라 에이지는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그 이름만큼은 일본과 미국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사와무라 에이지는 그 후 결성된 일본 프로야구 세계에 들어가 도쿄거인군(지금의 요미우리 자이언트)에 입단하였습니다. 1935년에는 미국 원정 시합에서 굉장히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1936년에 시작된 일본 프로 야구 공식전에서 사와무라 에이지는 일본 최초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시켰습니다. 그리고 그해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공헌하였습니다. 당시의 사와무라 에이지는 모두가 인정하는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뒤 잠시 중지되었던 프로 야구가 1946년 재개되었을 때, 마운트에서 사와무라 에이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와무라 에이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