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거 후시미 야구라
후시미 야구라에 담긴 이에야스의 마음
교토 후시미성에서 목숨을 걸고 이에야스를 지킨 무장이 있었다
오늘날의 황거(일본 천황의 주거지)를 예전에는 에도성이라 불렀습니다. 도쿠가와 정권 시절에는 도쿠가와 쇼군이 대대로 살았던 성입니다. 이 에도성을 짓게 한 것은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쟁이 멈추지 않던 전국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도쿠가와 정권을 일으켜 평화로운 세계를 일궈낸 인물입니다. 그 전에 전국시대를 끝마칠 것처럼 보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책략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실제로 권력을 손에 넣기까지는 엄청난 고생과 희생이 필요하였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 안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1589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9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손에 넣게 된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리보다 힘이 더 세질 거라 생각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하 이시다 미쓰나리와 그 외 신하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적으로 간주하였습니다.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 또한 자신을 적으로 생각하는 이시다 미쓰나리와의 싸움을 결심하였습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냥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사는 오사카에서 먼 곳으로 가면 이동하면 이시다 미쓰나리가 도쿠가와 가문을 공격하기 위해 전투를 걸어올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슈 아이즈에 있는 우에스기 가문을 토벌하고 오겠다는 명목하에 대군을 이끌고 오사카를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시다 미쓰나리 및 그 외 반도쿠가와파 무사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공격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군을 이끌고 가버리면 이시다 미쓰나리가 가미가타(지금의 긴키 지방)을 손쉽게 제압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미가타에 돌아올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대항할 병사를 어느 정도 남겨놓아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당시 가미가타의 본거지였던 후시미성에 병사를 남긴 뒤 아이즈로 떠났습니다.이때, 후시미성에 남아 있던 것은 도리이 모토타다라는 신하와 1800명의 병사였습니다. 도리이 모토타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충성을 바쳐온 신하였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이 미카와(지금의 아이치현의 일부)의 작은 명가였을 때 부터 많은 고생을 함께 해온 신하였습니다. 이러한 도리이 모토타다에게 후시미성의 수비를 맡겼습니다. 반도쿠가와 군은 대군을 이끌고 가장 먼저 후시미성을 공격할 것이 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장 신뢰하는 신하 도리이 모토타다에게 후시미성을 맡긴 것입니다. 남겨진 도리이 모토타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황거 니주바시 다리에서 볼 수 있는 후시미 야구라(망루) 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마음, 본 편에서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