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하치오지 센닌초
하치오지 센닌도신
천 명의 도신은 닛코도쇼구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도쿄 하치오지시에 센진초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이 지명은 에도시대에 도쿠가와 가문으로부터 이 지역의 ‘도신(지금의 경찰관)’ 업무를 명 받았던 사람들에게 유래하였습니다. 이 도신의 숫자가 천명이었기에 하치오지의 도신을 하치오지 ‘센닌도신(천 명의 도신)’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센닌도신이 살고 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센닌초(천 명의 마을)’이라는 지명이 되었습니다.도신들은 ‘가인’이라고 불리는 무사 중에서도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으로부터 받는 월급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밭일 등을 하며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하치오지 센닌도신은, 자기들은 도쿠가와 쇼군님의 가신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도신으로서의 경찰 업무 이외에도 학문이나 검술 연습을 계속해나갔습니다. 하치오지 센닌도신 중에서는 에도시대 말기 도쿠가와 가문에 목숨을 바친 신센구미의 중요한 멤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하치오지 센닌도신의 역할은 가이(지금의 야마나시현)와 무사시노(지금의 도쿄와 사이타마현)의 국경에 해당하는 하치오지의 수비 및 치안유지였습니다. 이윽고 가이가 도쿠가와 가문의 영지가 되어 국경 경비의 필요성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도쿠가와 가문은 하치오지 센닌도신의 충성심과 용맹함을 알고 있었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기게 됩니다. 닛코 도쇼구의 경비입니다.닛코 도쇼구는 시모쓰케(지금의 도치기현) 닛코에 있는 신사입니다. 이 닛코 도쇼구에는 도쿠가와 정권의 창시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잠들어있는 신사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을 닛코에 묻도록 유언을 남겼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이 에도의 북쪽, 흔히 말하는 귀신의 문에 위치한 닛코에 잠듦으로써 에도의 마을을 지키고 평화로운 시대가 이어지도록 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도쿠가와 정권은 닛코 도쇼구를 멋지게 건립하였습니다. 또, 평상시에도 경비를 삼엄하게 해 도쇼구가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였습니다. 도쿠가와 정권은, 하치오지 센닌도신이라면 그 역할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도쿠가와 정권의 창설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잠들어 있는 신사를 지킨다는 역할은 도쿠가와 가문을 모시는 충성심 깊은 하치오지 센닌도신들에게 최고의 명예였습니다. 하치오지 센닌도신은 자부심을 가지고 그 소임을 수행의 나갔습니다.하지만 시대가 변합니다. 도쿠가와 정권이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에 패배하였습니다. 닛코에는 도쿠가와 정권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무사들이 모여 반도쿠가와 군과 전투하려 하였습니다.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닛코 도쇼구도 무사하진 못할 것입니다. 이때 닛코 도쇼구를 지키고 있던 하치오지 센닌도신이 내린 결단은 무엇이었을까요? 세계 유산이기도 한 닛코 도쇼구를 목숨 걸고 지켜낸 무사들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