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오구 쓰쿠다 이시카와 섬
세계 최초의 본격 갱생 시설 이시카와지마의 인부 집합소
에도에 모인 부랑자들에게 기술 교육을 한 갱생 시설이 있었다
일본의 시대극 중에 <오니헤이 범과장>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도쿠가와 시대의 에도(지금의 도쿄)에는, 중죄자로 취급되었던 방화범과 강도를 전문으로 단속하던 직책이 있었습니다. 이 직책의 장관을 맡고 있던 하세가와 헤이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입니다.경찰의 역할을 하던 ‘마치부교’와 별개로 방화범/강도 단속반은 무장 강도 집단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군대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상대가 저항하면 무력 제압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사살하는 것도 가능하였습니다.이 단속반의 장관 하세가와 헤이조는 이야기의 주인공일 뿐 아니라 실제로 많은 활약을 하여 공적을 쌓은 인물입니다. 1789년 간토 지방에서 강도로 활동하던 도적단 ‘신토 도쿠지로’ 일당 체포에 성공한 뒤 하세가와 헤이조의 이름이 일본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791년에는 강도 및 부녀자 폭행을 벌였던 아오이 고조를 체포하였습니다. 당시 피해 여성들을 위하여 체포한 뒤 10일 만에 처형시키는 이례적인 속도로 재판을 하였습니다. 피해를 본 여성들 마음의 상처를 고려한 조치였습니다.이렇게 일본 전국에 이름을 떨쳤던 하세가와 헤이조도 사실 젊은 시절을 난폭하게 보냈습니다. 마을의 야쿠자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도박이나 술을 즐기고 빈번히 싸움에 휘말렸습니다. 싸움을 잘 했던 하세가와 헤이조는 어린 시절의 이름인 ‘데쓰사부로(‘철’이라는 한자가 들어감)’에서 따와 ‘이 동네의 강철’ ‘무서운 강철(오니테쓰)’과 같은 별명으로 불렸습니다.하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하세가와 헤이조는 서민의 삶을 이해하고 인정을 가진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에도 서민들은 ‘이 동네의 헤이조님’ ‘오늘날의 오오카(예전의 유명 부교 오오카와 같다는 의미에서)’라고 부르며 존경하였고, 도적단들은 ‘무서운 헤이조(오니헤이)’라고 불렀습니다.서민들의 마음을 헤아렸던 하세가와 헤이조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대개는 일자리를 잃고 생활이 궁핍해진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특히 지방에서 에도로 올라온 사람은 에도에서 일자리를 구할 만한 기술도 없었기 때문에 생활이 곤궁해질 확률이 높았습니다. 하나의 예로 지방에서 농민이었던 사람이 도시 생활을 위해 에도로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목수나 상인과 같은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고 에도에 호적도 없는 방랑자가 되어버립니다. 이 방랑자가 야쿠자가 되거나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그래서 하세가와 헤이조는 일자리가 없는 범죄자 예비군들인 방랑자들에게 직업 훈련을 제공하면 야쿠자가 되거나 범죄에 손을 뻗는 일이 줄어들 거라 생각하였습니다. 이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도쿠가와 정권 노중(지금의 수상)에게 어떤 제안을 합니다. 그 제안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결과 만들어진 시설은 어떤 곳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