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구 다이쿄초
청년 검객 오키타 소지
27세에 세상을 떠난 청년 검객 오키타 소지의 운명
도쿠가와 정권 말기에 활약한 신센구미는, 반도쿠가와 세력의 테러가 횡행하던 교토의 치안을 담당하였습니다. 원래는 에도의 낭인(모시는 주군이 없는 무사)들이 모여 결성한 조직이었습니다. 굉장히 위험한 임무였지만, 신센구미는 반도쿠가와 세력과의 전투에서 목숨 걸고 싸우며 교토의 치안을 지키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시대가 변하여 도쿠가와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신센구미의 멤버들은 도쿠가와 가문에 대한 충성심을 잃지 않고, 반도쿠가와 세력과 계속해서 싸웠고, 많은 사람이 전투 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깊은 충성심을 가졌던 신센구미는 진정한 <라스트 사무라이>로서 일본 역사 속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신센구미의 인기는 지금도 식지 않았습니다.그 신센구미 멤버 중,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이 오키타 소지라는 사람입니다. 오키타 소지는 신센구미 중에서도 젊은 편에 속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검호들이 많았던 신센구미 안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검술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신센구미를 이끌던 것은 국장 곤도 이사미였습니다. 오키타 소지는 곤도 이사미의 도장에서 검술을 배웠는데, 스승 곤도 이사미보다도 검을 잘 썼다고 많은 사람이 말하였습니다. 게다가, 흰 얼굴에 잘 생긴 외모(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센구미가 모여 검술 연습을 하는 날이면 그 누구보다 험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센구미 일을 쉴 때는 교토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곤 했습니다.신센구미 최강 검사이면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상냥함, 그리고 잘생긴 외모.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그의 인기가 식지 않는 또 하나의 요소는 그의 비극적인 인생입니다. 오키타 소지는 폐결핵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특히 인상적으로 묘사된 것이 이케다야 사건입니다.교토의 여관 이케다야, 혹은 시코쿠야에서 반도쿠가와 정권 무사들이 테러를 준비하고 있는 정보가 신센구미의 귀에 들어왔습니다. 정확한 모임 장소를 몰랐던 신센구미는, 시코쿠야가 본거지일 것이라 생각하고 대원 대부분을 시코쿠야로 보냈습니다. 오키타 소지는 신센구미 우두머리 곤도 이사미를 비롯 다른 세 명과 함께 이케다야를 확인하러 갔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들의 모임은 이케다야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수적으로 불리하였지만 반도쿠가와 무사들과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오키타 소지는 뛰어난 검술로 많은 적을 쓰러트렸지만, 전투가 한창일 때 피를 토해 더는 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그 이후, 오키타 소지는 큰 전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시대가 변하여, 반도쿠가와 정권 무사들이 세력을 손에 넣게 됩니다. 반도쿠가와 정권 입장에서 생각하면 신센구미는 동료의 원수였습니다. 그로 인해 새로운 정권은 신센구미의 목숨을 노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대가 변해가는 때에, 오키타 소지는 그 후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