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도시마구 조시가야 묘지
기구한 운명의 어부 존 만지로
표류한 어부의 아이가 미국의 포경선의 구조를 받다
도쿠가와 정권 말기에는 외국과의 교류가 엄격하게 제한되어 일본 사람들은 해외에 갈 수 없었습니다. 무단으로 외국에 가는 것은 사형에 처할 정도의 중죄였습니다.하지만 외국에 간 일본인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조난하였다가 외국 배를 만나 구출된 뒤 외국에 가게 된 일본인이 있었습니다.그 유명한 인물이 존 만지로였습니다. 존 만지로는 1827년에 도사(지금의 고치현) 지방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841년, 존 만지로가 14살 때, 배를 타고 바다낚시를 나갔다가 폭풍우에 조난하여 무인도로 떠내려갔습니다. 그때 가까운 곳을 지나던 포경선의 도움을 받아 존 만지로는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존 만지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기차가 달리고 있고 공장에선 물건들이 대량생산되고 있었습니다. 선거를 통해 나라의 지도자가 바뀌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당시의 일본에는 없던 것투성이였습니다. 또한, 존 만지로는 시민들이 신문을 통해 정치, 사회, 국제정세를 알게 되고 직접 정치 비판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정치 비판은 큰 죄였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미국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게다가 미국을 비롯한 서양제국은 해외 식민지를 늘려나갔습니다. 여러 나라가 일본에도 관심이 있단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일본도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그래서 존 만지로는 미국에서 여러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영어뿐만 아니라 수학, 측량, 조선, 항해술을 배웠습니다. 서양을 모르는 일본인들에게 서양에 대해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존 만지로는 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돌아가기 위한 자금을 벌기 위해 골드러쉬가 뜨거웠던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금을 채굴하였습니다. 그 금으로 중국으로 가는 배에 탄 뒤 도중에 작은 배로 갈아타서 일본에 돌아왔습니다.일본에 돌아온 존 만지로는 도쿠가와 정권으로부터 엄격한 수사를 받았습니다. 본인의 의지로 외국에 간 게 아닌 것, 기독교인이 되지 않은 것을 증명하고, 해외에서 본 것을 보고하거나 심문을 받으며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배가 조난 한 뒤 11년이 지나있었습니다. 그리고 존 만지로는 일본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존 만지로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본편에서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