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다구 간다고서점가
검호가 만든 간다 헌책방 거리
검술 뿐만 아니라 학문 수행도 중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간다의 책방 거리
일본에는 문무양도(文武両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도 잘하면서 운동도 잘하는 학교를 신문에서 문무양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운동과 공부를 둘다 잘하는 것을 문무양도라고 하지만 무사의 시대에는 검, 창, 활 등 무술과 학문을 동시에 잘하는 것을 문무양도라고 불렀습니다.뛰어난 사람은 학문과 무술 둘다를 익혀야 했고 그런 인물이 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무사가 목표로 해야하는 가치이기도 하였습니다.실제로 1400년경의 명장으로 유명한 오타 도칸은, 무예뿐만 아니라 와가(일본 시)에도 재능을 보였습니다. 검호 미야모토 무사시도 검 뿐만 아니라 서예, 그림 등의 실력도 뛰어났습니다. 또한, 1500년대 후반이 되면 전쟁에 참여하는 무사들 사이에서 다도를 배우는 것이 유행하였습니다. 무예와 학문의 양립은 오랜 시간 동안 일류 무사의 소양으로 생각되어져 왔습니다.1800년대가 되고 에도에는 3명의 검호가 있었습니다. 사이토 야쿠로, 모모이 슌조, 지바 슈사쿠가 그 세명입니다. 이 중에서 지바 슈사쿠는 호쿠신잇토류라는 유파를 만들어 무사나 마을 사람들에게 검술을 가르쳤습니다.지바 슈사쿠는 니혼바시에 검도장을 열었습니다. 지바 슈사쿠에게 검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에도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지바 슈사쿠의 도장이 인기를 끌게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까지의 검술에서는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에 형태 연습에 집중합니다. 형태 연습이란 것은 검을 휘두르는 자세나 준비 태세 등 전투를 위한 기초 동작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 형태 연습에 긴 시간을 들이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검도에서 실제로 시합을 할 때에 목도를 사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목도는 떡갈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맞았을 경우 타격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가 없는 사람이 목도로 싸웠을 때에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었습니다.하지만, 지바슈사쿠는 형태 연습보다 실전을 중시하였고, 싸워도 목숨에 지장이 없는 대나무 검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전적인 검실력을 익히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훈련 기간도 짧아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기를 끌어 지바 슈사쿠에게 많은 제자들이 찾아와 니혼바시 도장이 좁아져갔습니다. 그래서 지바 슈사쿠는 도장을 옮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그때 지바 슈사쿠가 생각한 것이 간다 오타마가이케였습니다. 지바 슈사쿠는 왜 이곳으로 옮긴 것일까요? 지바 슈사쿠의 생각을 본편에서 확인해보세요.